한국 항공 역사​​

최초의 한국인 비행학교와 비행대

1919년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수립 1년후 3월1일경 임시정부(임정)는 191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식민지배로 부터 독립을 쟁취 하기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북부 글렌 군 (Glenn County)의 군청 소재지 윌로우스(Willows)시 일원에 최초의 한국인 비행학교와 비행대를 설립했다.

1916년 부터 하와이에서 망명중이던 노백린장군은 임정의 국방장관 으로 임명되었다. 1914년에 유롭에서 발발한 세계 1차대전에 미국이 1917년에 참전 하면서 군 비행학교를 창설하고 큰 활약을 하였고 1918년 종전이루어졌던 시기 이었다.

 

일직이 글렌군에서 쌀농사로 성공한 독립운동가 김종림은 이미 한국청년들의 비행교육의 재정후원을 하고 있었고 노백린 장군의 비행학교 설립에 적극적인 재정후원으로 미국에서 제일 성공한 우수한 교관과 그가 가르친 한국청년 학생들을 조교로, 24명의 학생, 3기의 훈련용 전투기와 40에이커의 비행장과 비행학교 건물을 완비 하여 최의 한인 비행학교와 비행대를 창설하고 1920년7월5일 정식 개교 하였다. 약 1년이라는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꿈을 키우던 70여명의 조종사들이 비행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이 최초의 비행학교는 1921년 재정의 어려움을 겪으며 폐쇄되었으나 후에 대한민국 공군의 기반이 되었다.

둘리틀 폭격대 (Doolittle Raiders/B-25 Bomber Raiders)

제임스 \”지미\” H. 둘리틀 (James \”Jimmy\” Harold Doolittle)은 미국의 비행 선구자이자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에 참전하여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1941년12월7일 일본의 펄 하버(Pearl Harbor) 공습 이후 극비로 편성된 둘리틀 폭격대(B-25 폭격기 돌격대)의 지휘관으로 일본 본토 공습작전을 맡았다.

둘리틀 폭격대는 일본으로 출격직전 새크라멘토 매크레멘틱 비행장에서 최종 폭격기 점검을 하던 도중 인근의 비행장 몇군데서 최종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현재의 윌로우스-글렌비행장 이었다. 폭격대의 비행사들은 USS Hornet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비행장에서 이착륙 훈련을 반복했다. 마지막 훈련과 리허설을 마친 돌격대는 일본의 공습이후 약 5개월만인 1942년 4월 18일, 작전에 투입되었다.이는 항공모함이 작전 베이스가 된 최초의 공습 작전이였다.

플로이드 놀타 (Floyd Nolta)

플로이드 놀타(Floyd Nolta)는 윌로우즈(Willows)의 대표적인 비행 선구자들 중 한명이며 비행기를 이용한 벼씨와 살충제 뿌리기와 산불진화방법을 최초로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그의 형제들과 1928년 윌로우즈 비행 서비스 (Willows\’ Air Service)를 창립하여 비행기를 이용한 농업과 삼림화재진압을 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