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M이란
WAM이란
윌로우즈 에어 메모리얼 (Willows Air Memorial, WAM, 윌로우스 항공 기념재단)은 비영리 윌로우스 항공기념사업회이다.
2019년10월2일 공군 창군 7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 첫머리에 “앞으로의 승리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에게 있다”고 역설한 노백린 장군께서 3.1운동 1주기인 1920년3월에 윌로우스 임시정부 비행학교를 설립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가 되었고 이제는 대한민국 공군이 국가 안보의 핵심전력으로 성장하였다는 역설(力說)이 있다. 2020.4.11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기념식사에도 대한민국 공군은 윌로우스 항공학교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11.5에 발표한 임시정부관제에 소개된 “비행기대 편성기획” 시정방침에 따라 신임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을 중심으로 3.1운동으로 고무된 청년들을 모아 1920년에 대일항공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했던 캘리포니아 북부의 윌로우스 한인비행학교/비행대는 현재 세계 10강의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이며 더 나아가 세계 항공선진국이 되는 첫 씨앗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윌로우스 비행학교/비행대의 비행장 자리에는 기념비를 설치하고 학교 건물 자리에 폐가로 남아 있는 건물 3동은 복원이 불가능하여 원형데로 재건축하여 영구 보존하고 복원 가능한 1920년 당시의 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신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 황궁을 폭격하여 쑥밭을 만들고 독립을 이루겠다는 각오로 맹훈련을 한 학교는 재정난으로 1921년에 폐교하면서 그 각오를 접었다. 놀랍게도 21년후 미육군 항공대 소속 자원병들의 일부가 현 윌로우스 비행장에서 극비로 대일 항공전투 훈련을 하고 1942.4.18에 일본 본토 6개도시를 폭격하여 1941.12.7의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으로 인해 사기가 떨어진 미국인들의 사기를 충천케한 그들이 둘리틀 폭격대로 잘 알려진 미국의 영웅들이 었다. 이런 연유로,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대한민국 비행학교/비행대 사적지복원과 영구보존은 물론 대한민국의 공군 태동기 역사를 시작으로 미국의 대일 항공 전투 훈련 그리고 윌로우스 토착 항공인들의 경이스런 항공 역사도 함께 기념하는 미래지향적 대규모 한미항공박물관을 미국 최대주 캘리포니아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국도 변에 신축하여 한미양국의 국익을 위하여 영구 지속가능한 운영을 하는 것이 본재단의 설립목적이요 사명이다.
이 사업의 주체가 되기 위하여 2016년 9월22일에 윌로우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비행대 기념재단, 공식 영문명 Willows Memorial Foundation of Korea’s First Aviation School & Air Corps (EIN: 81-4193990, IRS 501(C)-3 DLN:17053192307037)을 캘리포니아 서기국에 등록 하였고, 한미양국의 항공기념 사업의 성격을 뚜렷이 하기 위해 글렌군에 사업명 Willows Air Memorial (윌로우스 항공 기념재단)을 등록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한인동포들이 시작한 한미양국의 항공기념사업체로 발전되어 현지 글렌군의 적극적 참여를 얻게 되었고 미국립공원 관리청에서 관리하는 미국립 사적지 지정의 대상이 되어 있기도 하다.
WAM 약사에 더 상세한 역사를 볼 있고 본 웹사이트를 통해 관련 정보도 찾아 볼 수 있고 또 blog 이나 e-mail 을 통해 본 사업에 동참하거나 관여 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윌로우스 한인비행학교/비행대와 미육군 항공대의 대일항공 전투훈련 소사
o 1919년 3·1독립운동과 동년 4월11일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수립에 기하여 1916년부터 하와이에 망명중인 노백린 장군을 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선임하였고 다음 해 1920년 임시정부는 노백린 장군을 중심으로 미국 북가주의 윌로우스(Willows) 시 일원에 대일 독립전쟁을 위한 전투비행사 양성을 목적으로 1920년3월에 비행학교를 설립하였고 7월5일에 개교 하였다. 노백린(盧伯麟, 1875~1926) 장군은 관비 장학생으로 일본 육사 졸업후 일본 소위로 진급되어 복무후 1900년 귀국하여 육군무관학교장, 육군연성학교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국군을 현대화하였다. 건국공로훈장(1962)을 수여받았다.
o 재미동포 애국지사 김종림(金宗林, 1884~1973)은 백미대왕으로 불릴 정도로 벼농사에 성공한 최초의 미주 한인 백만장자로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기부하던 중, 노백린 장군의 비행학교/비행대 창립의사를 들은 후 대한인국민회 소속 재미 한국 동포들과 함께 모금에 중심인물이 되어 2만 달러의 자금과 월 3천불 경상비 10개월 지원등 총 5만불 (현재 가치로 약 일천만불)의 자금과 약 40에이커(약 5만평)의 비행장 부지를 확보하고 Standard J-1 훈련기 3대를 구입하는 등 결정적인 재정 공헌을 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2005)을 수여받았다.
o 처음에는 24명(최종 70여명)의 한인 학생을 대상으로 군사전술, 비행술, 영어 등을 교육하였으며, 같은 해 7월 5일, 노백린 장군과 재미동포 200명, 미국인 비행교관 프랭크 브라이언트(Frank Bryant)가 참석한 가운데 공식 개교하였다.
o 1920년 10월, 김종림 지사가 운영하던 쌀 농장이 대홍수(폭풍우)로 심각한 타격을 받아 재정지원이 끊기면서 이듬해인 1921년 4월 폐교되었다.
o 비록 한인비행학교가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이후 비행학교 관계자들과 생도들은 미군이나 중국군 등 연합군의 일원으로 대일전쟁에 참전하거나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임시정부는 이후 1943년 8월 「공군설계위원회조례」를 공포하는 등 공군 창설 노력을 지속하였고, 이는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 창설로 계승되었다.
o 한인비행학교 교육생인 박희성, 이용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비행장교(참위, 현 소위)로 임관되었다. (1921. 7. 18.)
o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대일 항공 독립운동의 역사적 상징이자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재미 동포 사회에서 애국심과 자부심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o 미래에는 하늘을 지배해야 승리한다는 선각정신으로 대일 항공 독립 전쟁을 준비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 한 비통함이 있었으나, 21년후 1941.12.7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여 다음날 미국의 대일 선전포고와 이틀후의 임시정부의 선전포고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임정의 비행학교는 시대를 앞서 갔음이 증명되었다.
o 미국인 비행교관 Frank Bryant는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100여명의 남녀 조종사를 배출한 최다조종사 배출 공로로 미국의 세계1차 대전 참전 당시 1917년에 미국 항공의 총사령부에 해당하는 육군 통신단 항공국으로 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이러한 미국 항공군사 훈련의 시조라 불릴 만한 경력의 항공선구자가 한국 청년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친 학교건물과 비행장은 한미동맹의 상징성이 살아 숨쉬고 있는 역사 건물이고 유적지이다. 즉 이 비행학교 100주년은 실제적으로 한미양국의 군조종 교육협조 100주년이 된다.
o 1941.12.7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1942.4.18에 응징 폭격한 둘리틀 공습부대 (일명 Doolittle 특공대)의 일부가 출격 직전 극비로 실전적인 훈련을 했던 곳이 현 윌로우스-글렌군 비행장이다. 당시의 육군 항공대 중령이었던 지미 둘리틀은 B-25 16기와 승무원 기당 5명씩 총 80명으로 일본 본토를 폭격하고 중국으로 비행하였다 구사일생 귀환하고 모두 미국의 영웅이 되었으며 둘리틀 장군은 육군 항공대 예비역 공군 중장으로 태평양 전쟁중 제일 치열 했던 오키나와 전투 직후 제8공군 사령관이 되어 결전을 준비 하던 중 원자탄 투하로 일본이 미조리 함상에서 항복할 당시 그 서명식에 참가하였다. 즉 윌로우스에서 한미 양국의 대일 항공 전투를 준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o 1918년 18세의 윌로우스 청년 Floyd Nota는 1차대전에 징집되어 샌디애고 소재 미국통신단 항공 학교에서 정비 훈련을 받던 중 조종 교관 둘리틀 소위를 만나 그와 40년지기 친구가 되었고 그 자신의 비행술을 바탕으로 윌로우스 비행장에서 1928년에는 항공 쌀농사를 개발 하였고 1955년에는 인근 멘데시노 국립 삼림 (Mendocino National Forest ) 의 화재 관리자의 요구로 쌀농사용 비행기를 산림화재 진압용 물탱크 비행기로 변환하여 최초의 화재진압용 물 탱크를 만들어 사용한 발명인이 되었다. 1956에는 9명의 조종사들로 구성된 윌로우스 화재진압대를 조직하여 전 캘리포니아주의 산불 진화 사업을 시작으로 전미국의 산불 진화에 공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유명 영화 십여 편 제작에 곡예비행사로 활약을 하여 윌로우스는 유명 배우들과 둘리틀 장군을 비롯 유명 항공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어 윌로우스는 널리 알려 지지 않은 농림 항공술의 발상지요 비행술 각축장(Air Show)으로 명성을 얻었다.
o 이 비행장 동쪽 8마일 떨어진 윌로우스 한인비행학교 비행장 자리와 학교건물 자리는 대한민국의 항공독립운동 사적지이니 복원하고 영구 보존함이 본 재단의 제일 중요한 목적이다. 소유주가 각각 달라 그 소유주들과 토지 사용 혹은 거래를 위한 양해각서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현지 군의 농지정책과 환경보호 정책으로 비행장 자리는 최소 72에이커 그리고 학교건물 자리는 최소 36에이커 이상이 되어야만 토지거래가 가능하여 불필요한 투자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일반 도로와 멀리 이격된 장소라 일반대중에게는 발견되기 힘들어 박물관 용도 효용성은 매우 낮은 곳이다. 이 두 토지를 분할하여 구입하는 유일한 방법이 여기를 사적지로 지정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킨 후 비행장 자리에 사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를 설치하는 정도로 하고 학교 건물 자리의 폐가로 남아 있는 건물 3동은 원상복구는 불가능하지만 동일 형태의 재건축을 하여 영구 보존하고자 한다.
o 복원 가능한 1920년 당시의 비행학교 건물은 1914년에 1.5 마일 서북의 현위치로 옮겨져 개인의 소유로 보존되었다. 건물주는 이 건물을 지키고 싶지 않으나 대한민국 사적물로 복원할 수 있도록 본 윌로우스 항공 기념재단에게 배타적 매매 양해 각서에 서명하였고 때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현 윌로우스 비행장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일 항공전투와 괴를 같이 하는 미국의 대일 항공 전투 훈련장이었고 미국의 농림 항공 발상지라는 깊은 뜻이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류기원 회장과 토착 항공인 이고 본재단 이사인 Gary Hendrickson은 윌로우스 비행장 소유주인 글렌군 (Glenn County) 행정-의회 감리위원회 (Board of Supervisors of the Glenn County)의 2018.2.20 회의 참석하여 발표하고 정식 제안서를 제출하여 2018.7.31일 감리위원회 회의에서 한미양국의 항공박물관/기념공원을 조성하도록 비행장 부지중 20에이커 (81,000m2, 24,500평) 부지를 본 재단이 사용하도록 실제적인 영구 임대를 가능하도록 결의하였다. 이 부지는 서부 미국을 캐나다 로부터 멕시코 국경까지 남북을 관통하는 Interstate-5 국도 노변에 철조망 하나를 두고 병행하는 1,000m기리의 토지이다. 하루 평균 3만대 이상의 교통량이 높은 도로이다. 미항공국(FAA) 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지방자치 단체의 비행장이라 그 일부를 사고 팔 수가 없으나 시가 $200만불에 해당하는 토지 사용권을 허락할 정도로 현지 군의 협조를 얻었고 명실공히 이 한미 항공 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세계 10강의 대한민국 공군과 항공우주의 한미 공동 발전사를 홍보 교육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인 비행학교 건물을 윌로우스 -글렌 비행장으로 다시 옮겨 이를 중심 건물로 하여 대형 박물관/기념공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o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비행장 자리와 학교 건물자리의 사적지 신청을 준비 하려는 중 윌로우스 비행학교/비행대에 관한 책들의 공저자이고 다수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한 가주 대학교 리버사이드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장태한 (Edward T. Chang) 교수가 미연방 국립공원 관리청에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국립사적지 (U.S. National Historical Landmark) 지정 신청을 한 일이 있음을 알려와 2019.8.26에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공무원을 초청하여 글렌군 감리(監理) 위원이며 비행장 관리위원장,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와 담당영사, 장태한 교수, 관련된 토지와 건물소유주들, 글렌군 사무총장, 윌로우스 박물관장과 본대재단 이사들과 만나 질의 응답 회담을 하고 현지 시찰을 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국립공원 관리청 담당자가 국립 사적지 지정을 허가할 의도를 밝혀 공식 문서화 용역회사 고용 모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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